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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arto Co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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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CEDES-BENZ SLK 230 R170, 떠나보낸 미인을 추억하며

    Holic™ | 2022. 12. 17. 19:39 Cappuccino (EA11-R)

     

    메르세데스(멀쎄대즈라 써야 하나 고민하다) 벤츠 중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차를 꼽으라면 SLK, 1세대 초기형 R170이 생각난다. 카푸치노를 두고 잠시 외도하며 처음으로 소유했던 독일 차기도 하고 주인 잘못 만나서 라기엔 나도 차 때문에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래저래 눈물 젖은 추억이 많다. 흔히 SLK 오너들은 차를 슬기라 부르는데, 오너들 모임에 나가면 다들 슬기 아빠(...) 슬기 오빠. 독일에서 온 아가씨니 애칭은 한나라고 지어줬는데, 딱히 애칭으로 부르지는 않았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차를 가져올 당시 사이드미러 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SLKI R170 미국 사양은 폴딩 사이드미러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서 가져온 SLK R170은 S-Class W140과 같은 스위치를 사용한다. 이베이 스위치 가격은 중고 200달러 근처. 스위치를 뜯고 깨진 부품을 탈지 후 현미경으로 보면서 보강 접착하고 피벗을 새로 심고... 그렇게 살렸다. 그리고 사이드미러 모터도 교체.

     

    사이드미러 조절 스위치가 기름에 절어있었는데, 어느 날 천정에서 똑똑 떨어지는 오일이 딱 스위치에 고이는 걸 발견. 고질병이랄지 SLK 오너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라는 바리오 루프 락킹 실린더 누유. SLK의 루프를 닫은 뒤 유압 후크로 단단히 고정하는데, 이 실린더의 오일 씰이 노화되어 생긴 문제.

     

     

    오일 씰 교체 키트는 이베이에서 70달러 정도에 구입할 수 있는데, 교체가 일이다. 국내에서 바이톤 오링으로 수리해 주는 곳도 있는데 이건 금방 터진다. SLK 바리오 루프 실린더 수리는 반드시 전용 규격 U링을 쓰는 게 맞다. 일단 처음 할 때 알루미늄 실린더에 드릴로 구멍을 내야 하고, 피스톤을 빼낸 후 씰 교체할 때는 쫀쫀한 씰을 벌려가며 기름으로 미끈거리는 실린더를 밀어 넣는 일이 장난 아니게 힘들다. 그리고 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장재 탈거가 실린더 수리보다 귀찮고.

     

     

    SLK 바리오 루프는 5개의 유압 실린더로 움직이는데, 보통 루프 전면 중앙 락킹 실린더가 제일 먼저 터진다. 그리고 이걸 수리하고 나면 99% 확률로 다음 실린더가 터진다. 가장 약한 데를 막으면 두 번째로 약한데 압력이 집중되어 터지기 때문인데, 무조건 한 군데 터지면 5군데를 바꿔야 후환이 없다. 처음에는 오일이 똑똑똑 하고 떨어지다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나중에는 루프를 열고 닫을 때마다 오일이 피처럼 뿜어져 나오고, 뒤 범퍼 아래 뚝뚝 떨어져 고인다.

     

    SLK 바리오 루프 실린더 자가 수리했다는 소문이 지인들에게 도니, 다른 지인들도 수리해달라 차를 맡긴다. 총 3대 수리하고 더는 안 받았다. 모 숍에선 실린더당 30만 원씩 150만 원 공임 받았다는데, 실린더 수리비 한 개 비용도 안 받았으니 돈 벌어 부자 되긴 틀렸지. 얼마나 귀찮은가 생각해 보면 150만 원은 적정 공임이다. 차 한 대 수리할 때마다 주차장에서 주말 이틀을 보냈다. 씰링 삽입용 전용 공구까지 깎아 만들었지만 다시는 내 손으로 SLK 루프 수리할 일은 없겠지. 이젠 뭐 반나절이면 할 수 있을 듯한데...

     

    알터네이터도 갈았다. 장거리 달리고 온 다음 날, 시동 걸 때 왠지 크레용 냄새가 나는 듯했다. 별일 아니라 생각하고 출근하는데 톨게이트 바로 앞에서 경고등이란 경고등은 전부 불이 들어온다. 게이트 통과 직전 주차장에 차 밀어 넣고 눈앞에 보이는 빈칸에 차를 대니 바로 시동이 꺼졌다.

     

     

    차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했다. 한성자동차 서비스센터 밀어 넣었다간 수리비 폭탄을 맞을 게 분명하니 수소문하다 BMW 성지라는 정글팩토리로 차를 보냈다. 재미있는 곳이다. 예약 안 하고 가면 문 안 열어준다. 전화 예약 안 받고 문자 예약만 받는다. 이유는 전화받으며 정비하는 것은 정비를 대충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맞는 말이지. 알터네이터를 주문했는데 용량이 더 큰 게 왔다. 주문은 제대로 했는데, 해당 업체에서 품번이 꼬였다고 한다. 용량 큰 알터네이터 장착해서 손해 볼 건 없겠다 싶어 그대로 장착. 부품은 실비, 공임은 비싸지 않고 합리적인 편. 덕분에 청주 근처 좋은 숍을 알게 되었으니 전화위복. 일본 차는 안 받는다고 하는데, 오일 교체 정도는 가능하다고.

     

    고속도로 폭주는 범죄고, 난 폭주족 맞다.

     

    별문제 없이 달리도록 차를 만지는 데 1년 정도 걸렸다. 오일 팬 누유 때문에 엔진 들어 올리고, 내친김에 마운트와 에어 호스류도 다 갈았고, 친구 얼굴 보러 인제 서킷도 다녀왔고, 투어도 제법 다녔다. 어머니 모시고 거제도에서 오픈 에어링을 즐겼고, 2022년 1월 1일 동해안 일출 보러 이 녀석과 함께 다녀왔다. 1년 넘게 타고 다니는 동안 교통 신호는 잘 지키고 칼치기도 안 하는데, T맵 운전 점수는 22점을 찍었다. 과속단속 카메라 나오기 전엔 브레이크를 안 밟았을 뿐. 다이나모 실측 202마력, 고속도로에서 220km/h 정도의 속도는 충분히 낼 수 있다.

     

     

    SLK 230 R170은 생각보다 스포티한 차다. 오토매틱이 아니라 매뉴얼 트랜스미션이었으면 팔지 않았을 거다. 오토매틱 트랜스미션도 당시 AMG 엔진과 매치 가능할 만큼 내구성이 뛰어난 녀석이다. 다만 빠르게 자주 변속하는 와인딩 로드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라, 출발하며 길게 가속하며 변속하는 드래그에 더 어울리는 아메리칸 스타일. 사실 SLK의 4단 트랜스미션이 왜 이런 형태인지 몰랐는데, 콜벳의 변속기와 대단히 닮은 스타일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드래그 레이스용 차는 사실 자주 변속할 필요가 없어 3단으로도 충분했다고. 그리고 SLK가 원래 미국 시장을 노린 모델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SLK 230 R170은 꽤 스포티한 차다. SLK 350부터 엔진 무게가 크게 증가해서 앞이 확 눌리고, 출력은 늘어났지만 와인딩에서 움직임이 굼뜨다. 같이 달려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내리막길에서 SLK 230을 SLK 350이나 SLK 55AMG (R171)가 못 따라온다. 코너링이 상당히 매끄럽고 '쉽다'. ASR이라는 자세제어장치의 개입은 거의 없다고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와인딩에서 ASR 끄고 달리면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ASR을 켜고 달리는 게 훨씬 빠르다.

     

     

    고속도로에서 과속을 유발하는 차다. 달리다 불안감이 느껴지는 속도 영역이 되면 슬슬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놓게 되는데, 속도가 붙을수록 바닥으로 눌리는 듯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동 시기 나온 BMW 들과 다르다. GT 성향, 콤팩트 로드스터지만 장거리 고속주행을 즐기기에는 기막히게 좋다. 너무 편안하니 SLK가 미국 할머니 차라는 얘길 들어도 그냥 웃고 공감하게 된다. 하이 옥탄, 고급유 안 넣어도 별 트러블 없고 OM111 컴프레서 엔진의 우수한 내구성은 충분히 검증되었다. 오일 교체 주기마다 점검하며 조금씩 손보며 타면 크게 고생할 일 없는 그런 차.

     

    이 차와 함께하는 동안 뜯을 수 있는 부분은 내 손으로 다 만졌다. 차의 거의 모든 부분을 알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무섭지가 않게 된다는 걸 SLK와 함께 경험했다.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다시 독일차를 가져오게 된다 해도 이 녀석과 함께 했던 경험은 도움 되겠지.

     

     

    매끄러운 실루엣을 보면 귀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가씨 같다는 생각이 드는 우아한 자태의 로드스터. 아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난 BMW Z3가 아니라 SLK 230을 보고 첫눈에 반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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