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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MULLER Cintress Curvex Retrograde secondes 본문
FRANK MULLER Cintress Curvex Retrograde secondes
선생님께서 손님 시계 하나를 오버홀 하라고 주셨다. 롤렉스 올드모델에서부터 중국산 무브의 온갖 가품 시계까지 만지다 보니 어느 정도 수준의 시계인지 대강 보면 감이 오는데, 이 프랭크 뮬러는 긴가민가 하다. 절대 싸구려 시계는 아닌 듯 한데 상태가 왜 이래?
시계를 받아보니 케이스는 온통 스크래치 투성, 백을 고정하는 네 개의 나사 중 하나는 제 것이 아니고 빨갛게 녹슬었다. 다이얼은 양 측면에 크랙이 갔고 아무리 봐도 이건 전투용으로 막 사용한 시계 같은데. 하지만 프랭크 뮬러 특유의 레트로그레이드 세컨드, 0에서 60초까지 쭉 가다가 마지막에 다시 0으로 점프하는 방식의 초침이 적용되었다.
프랭크뮬러 생트레 커벡스 레트로그레이드 세컨드. 오리지널의 가치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상태가 안 좋은 시계인데, 가품이라 보기엔 레트로그레이드 세컨드 구현까지 된 무브먼트가 심상찮고. 결국 선생님께 이거 진품 맞냐고 여쭈었더니 케이스 백을 작업대에 툭 던지신다. "뎅그렁~"
이게 어딜 봐서 가품이냐고 한 소리 들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는 무게부터 다르다고. 생각해보니 왠지 묵직하더라. 이건 화이트골드다. 스크래치 난 표면도 자세히 살펴보면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와 달리 뭉개진 듯한 느낌으로, 왠지 연질 금속의 질감이다. 귀금속 쪽 일을 하시는 지인에게 여쭸더니 금속의 경도가 낮을 뿐 아니라 완벽하게 균일한 열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특유의 무늬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여튼 매일 보다보면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화이트골드 케이스의 프랭크 뮬러면 적어도 새 것 가격으로 롤렉스 서브마리너 스틸 두 개는 살 수 있었을테지. 이런 시계를 전투용으로 사용하시는 분도 참 대단하긴 하다. 사실 비싸도 매일 차고 다니는 시계다. 고장나면 고치고, 스크래치는 폴리싱 해 없애면 되는 거고, 줄은 낡으면 바꾸면 되니까.
무브먼트는 꽤 심플하다. 기성 무브먼트의 다이얼 사이드에 레트로그레이드 세컨드를 위한 유니트를 겹친 형태. 칠각형 별 모양 기어가 1분에 한 바퀴 도는데, 톱니바퀴 이빨 하나는 높이가 낮아 여섯 개의 이빨이 초침을 밀어 움직이다가 여섯번째 이빨이 걸릴 차례에 쑥 빠지며 초침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초침부 중앙에는 나선형 헤어스프링을 사용했다.
사실 프랭크뮬러의 시계가 완전한 자사 무브먼트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높은 가격을 받는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이야기고, 이 때문인지 요즘은 예전 만큼의 인기가 없다. 그럼에도 무브먼트의 완성도는 우습게 볼 수 없는데, 밸런스휠 브릿지는 아주 정교한 레귤레이터를 갖췄고, 나사 및 치차의 소재와 가공 정밀도는 단순한 기성품의 수준을 넘는다. 눈으로 봐서 알기 어려운, 손 끝 감각이 말해주는 무브먼트의 특징이다.
오버홀 자체는 간단한 편. 메인스프링이 배럴 안쪽에서 제대로 걸리지 않고 헛돌기에 다시 열어 살짝 손 본 것 말곤 전반적으로 무브는 양호하다. 다이얼도 잘 보면 광을 낸 금속판 위에 클리어 래커를 몇 겹 올려 깊은 광택이 난다. 이런 디테일이 고급 시계의 특징. 대강 넘어가도 크게 티 나지 않을 부분이지만, 제대로 만들려면 무척 공이 들어가는 부분. 다이얼과 핸즈만 봐도 시계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는 건 과장이 아니다.
오래된 시계가게에서 배우고 있기에 이런 만나기 어려운 시계도 만져보게 된다. 그저 선생님께 감사드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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