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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 7750 VALJOUX, 이 원한을 풀지 않고 배길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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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A 7750 VALJOUX, 무브먼트, 시계, 시계수리, 에타 벨쥬 7750, 크로노그래프, 태그호이어
시계를 만지다 보면 가장 흔하게 다루게 되는 무브먼트가 ETA 2824 패밀리라고 말한다. 심지어 시계 관련 학과에서 기초 교재로 사용하는 ETA 2824인데, 정작 난 시계를 배우면서 ETA 무브를 접한 횟수는 유독 적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익숙한 무브의 순위를 매긴다면 세이코, 오메가, 론진 순으로 줄을 세워야. 그 외 브랜드로 보면 롤렉스, 에니카, 라도, 부로바, 오리엔트 등등 일본이나 프랑스 및 러시아에서 온 녀석까지... 돌아보니 숫자가 제법 되는구나.
하지만 최근 수리를 시작한 태그호이어 덕분에, 어느샌가 손가락이 ETA 무브먼트를 익숙하게 기억하기 시작했다. 무브먼트마다 재질이나 촉감, 마감, 나사의 크기와 돌리는 감각 등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데, 대체로 같은 메이커 무브먼트는 익숙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렇게 열심히 만진 ETA 무브먼트가 2824가 아닌 7750 크로노그래프라 그렇지. 그냥 오버홀 정도면 별 거 아닌데, 내 현 상황이 '초등학교 들어와서 남들도 다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미적분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알고보니...'
전에 한 번 수리해서 출고했는데, 다시 문제가 생겨서 돌아온 태그호이어를 맡게 되었다. 무브먼트는 에보슈로 들어간 ETA 7750 VALJOUX. 주인이 '평소에 시계를 살살 다루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건 모르겠고 모든 건 무브먼트가 말 해준다.
시계를 흔들어 로터가 돌아도 태엽이 안 감기는데, 치차 하나가 판과 축이 분리되어 따로 노는 상태라. 눈으로만 확인해선 알 수 없는 부분. 또, 태엽이 든 배럴을 열어보니 아주 가관이다. 웬 쇳조각이 튀어나오질 않나... 태엽을 뽑아보니 이상 없이 작동은 가능한 상태라, 세척 후 다시 감아 넣고 오일링.
초침차 축이 살짝 휘었는데, 이 또한 과거 수리한 부분이라고. 동작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니 넘어가자. 당장 큰 문제는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을 정도로 밸런스 휠의 회전각이 안 나오더라. 시계를 얼마나 얌전하게 다루는 사람이기에 무브가 이 모양인진 미스테리. 바닷물 들어가서 녹으로 떡진 세이코 다이버 워치 이래, 이 정도로 맛 간 무브먼트는 참 오랫만이다.
어떤 경우에도 가장 먼저 의심할 부분은 오염이다. 세척 후 재조립. 밸런스 휠의 회전각은 270도 내외로 잘 나온다. 역시 문제는 오염 때문인가 했는데, 크로노그래프 유닛까지 다 조립하고 나니까 다시 밸런스 휠이 멈춘다... 막판에 이러면 쌍욕 나온다.
크로노그래프 유닛 분해. 발가벗긴 무브먼트로 테스트하다 보니 패턴이 보인다. 특정 각도로 기울였을 때 정상작동 하고, 특정 각도에선 밸런스 휠의 움직임이 크게 둔해진다. 일단 중력의 영향을 받는 부분이 문제라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도 눈이 닿는 곳에서는 문제를 찾아낼 수 없으니, 결국 새 ETA 7750 무브를 주문했다. 태그호이어의 무브먼트와 1:1로 부품을 바꿔가면서 테스트 하면 답이 나오겠지.
덕분에 새 무브먼트 하나 중고로 만들었고, ETA 7750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가장 익숙한 무브먼트로 자리잡은 건 덤. 덤비는 김에 무브먼트 개조만 빼고 이것저것 테스트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며 놀기. 밸런스 휠은 문제의 범인이 아닌 걸 확인했고, 팔레트 포크가 범인이라는 의혹이 짙었으나 아슬아슬하게 결백을 증명했다.
그나저나 첨엔 ETA 7750이 원래 이리도 지랄맞은 무브인가 싶었다. 하지만 새 ETA 7750 무브먼트는 안 그렇더라. 6방향 모두 밸런스 휠 회전각도 일정하게 잘 나오고 시간도 너무 잘 맞아. 이렇게 착할 수가! 하지만 왜 맨날 내 손에 들어오는 물건은 특별히 지랄 맞은 녀석만 걸린대?
아무래도 태그호이어랑 내 궁합이 어지간히 안 좋은가 보다. 이거 말고 오버홀 중인 다른 태그호이어의 ETA 2892 A2 무브먼트도 세척 잘 해서 조립했는데, 기분이 영 쌔~한 게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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